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타운급 경순양함 (문단 편집) === 사우스햄튼급 === *1번함 '''HMS 사우스햄튼''' (HMS Southampton) 1번함 사우스 햄튼은 취역후 메인함대의 기함이되었고 제2 쿠르즈 비행함대의 기함역할도 했었다. 39년 9월 5일 독일의 상선을 나포하는등 초기에 활약을 펼쳤다. 39년 10월 16일 사우스햄튼은 독일의 공습으로 150m 높이에서 500kg 폭탄이 3개의 수평장갑을 차례대로 관통했고 물속에서 폭발했다. 이로 전기계통에 경미한피해가 발생했고 구조적인 손상이 발생했다. 연말 순양함 라왈핀디가 침몰돼 노스캐이프 해전에 참여 그후 40년 2월까지 스카파 플로우의 제 18 크루저 함대에 소속되었다. 40년 4월 9일 사우스햄튼은 독일의 공습의 의한 파편피해로 함내 배터리가 파손되었고 10월에 지중해에서 침공방지를 위한 활동을 진행하였습니다. 12월에 사우스햄튼은 홍해로 이동하여 부대호송을 호위 동아프리카 키스마유 포격전에 참여했다. 그러나 사우스햄튼은 루프트바페의 급강하 폭격기 [[Ju-87|슈튜카]]의 공격으로 적어도 2개의 폭탄이 명중 함내 화재가 번지면서 사우스햄튼은 글로스터에 어뢰 1발과 순양함 오리온의 어뢰 4발로 격침되었다. *2번함 '''HMS 뉴캐슬''' (HMS Newcastle) 뉴캐슬은 대전 초기에 독일 구축함 2대를 대파시키는등의 활약을 올렸고 1939년 11월 23일 [[샤른호르스트(전함)|샤른호르스트]], [[그나이제나우]]와 조우했지만 악천후를 틈타 도망쳤다. 40년 11월 27일 이탈리아를 상대로 남대서양을 봉쇄하기위에 활동했으며 이후 지중해에 재배치 되었다. 41년 6월 15일 독일의 잠수함의 공격으로 배에 커다란 구멍이 발생했으며 [[알렉산드리아(이집트)|알렉산드리아]]에서 긴급수리를 받고 이후 여러곳을 돌아다니며 계속해서 이부분에 대해서 수리받는다. 뉴욕에서 주둔중 [[스리랑카|실론]]의 동부연함함대에 합류했으며 제 4부대의 기함을 하였으며 일본군의 점령지등을 포격했다. 전쟁후 광범위한 대규모 개장을 받았으며 1950년대 말레이시아 비상사태 기간동안 말레이시아의 공산주의 시설등을 포격했다. 뉴캐슬은 1959년 매각스크랩 되었다. *3번함 '''HMS 셰필드''' (HMS Sheffield) 셰필드는 기존에 설계와 다른것이라면 승조원의 청소를 줄이기 위한 설계가 반영되었고 1938년 영국왕실함대 소속중 최초로 프로토타입의 레이더를 장비했다. 셰필드는 제노아포격작전에 참여하였고 비시프랑스의 함대를 방어하기 위해 몰타에 배치되었다.또한 [[비스마르크 추격전]]당시 셰필드는 비스마르크를 추격도중 [[아크로열급 항공모함|아크로열]]이 오판을 저지르며 아군 셰필드에게 [[팀킬|뇌격]]을 시도하게 되지만 어뢰 대부분이 빚나가거나 수면마찰로 폭발함으로 피해를 면한다. 또한 유조선인 프리드리히 브렘을 격침시켰으며 독일의 보급선 코타페낭을 격침후에 본국으로 귀환한다. 42년 3월 3일에 기뢰와 접촉해서 손상을 입고, 42년 7월까지 손상을 수리했다. 이후 [[횃불 작전]]에서 연함군의 상륙에 도움을 준다. 바렌츠해 전투에서 셰필드는 구축함 프리드리히 에커트를 격침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어드미럴 히퍼]]를 중파 구축한대를 대파시키는등의 성과를 올렸다. 43년 2월 비스케이 만에 배치되었고 7월과 8월에 눈사태작전에 동원되었다. 12월 말 [[노스케이프 해전]]에서 [[샤른호르스트(전함)|샤른호르스트]]를 격침하는데 참여한다. 1944년 4월부터 8월까지는 티르피츠에 대한 공습을 진행하는 항공모함의 호위로 복무했다. 이후 보스턴과 영국에서 개장을 진행하면서 2차 대전에서는 더 이상의 활약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독일 전함 3척을 격침시키는 일련의 과정에 전부 참여한 순양함이 되면서 함선의 지위가 전함들 턱밑까지 치솟았고, 1946년 5월에 개장을 마치고 나서는 서인도 제도 버뮤다에 주둔하는 영국 해군 함대의 기함이 된다. 1959년 1월에 예비역으로 돌려지지만, 1960년에 다시 현역으로 복귀해서 1964년까지 숙박선(accommodation ship)으로 복무한다. 셰필드는 원래 함선의 전과와 타운급 경순양함의 원래 구조를 대부분 간직하고 있는 역사성이 인정받아서 기념함이 될 예정이었지만 1966년에 재검사한 결과 현역 복귀 이후의 관리부실이 너무 심각했던 탓에 1967년 기념함으로 남지못하고 스크랩되었다. 셰필드에 달려있었던 종은 이후 셰필드 대성당에 전시되었다. *4번함 '''HMS 글래스고''' (HMS Glasgow) 전쟁전 글래스고는 제2 순양 함대에 편성되었으며 전쟁이 발발한 그해에 영국 주력함대에 소속으로 변경되었다. 39년 9월 2일 글래스고는 험버포스와 함깨 독일의 상선파괴 및 함대 격파를 위해 노르웨이 해안에 순찰배치 되었고 39년 10월 9일 독일의 공군에게 색적 폭격기들이 120개의 폭탄을 투하했으나 모두 회피했으며 아무런 손상을 입지 않는다. 전쟁이 발발하자 글래스고는 스칸디나비아 해역에 배치되었고 40년 2월 12일 독일의 어선 1척을 나포한다. 40년 4월 9일 [[베르겐]]에서 Ju88과 하인켈 111의 공격으로 두번째 회피기동중 실수로 두개의 폭탄이 옆에 각각 떨어졌는데 4.6미터 거리에서 폭발하면서 파편에 배의 흘수선에 피해를 받았고 하나는 기저아래에서 폭발 약 지름 1.5m의 구멍을 만들었다. 그와중에 배의 움직임으로 53번 세로구역부터 74번 세로구역까지 침수가 발생 전방 1번포탑의 작동이 멈추었다. 4월 10일 스카파 플로우로 회항했고 임시수리를 받는다. 다음날 바로 전선에 복귀 노르웨이 셰필드와 예하 구축함으로 구성된 6척의 함정이 연합군의 상륙을 도왔다. 노르웨이에서 철수한 글래스고는 주력함대에서 다시 활동했으나 40년 짙은 안개속에서 아군의 구축함 이모겐과 충돌했으며 이모겐은 침몰한다. 글래스고는 다시 한번 수리후 지중해에 배치 호송호위를 진행하였고 [[타란토 공습]]에서 이탈리아함대를 일시적으로 무력화하고, 11월 14일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시드니, 요크와함대 상륙부대 호위등을 했다. 12월 3일 글래스고는 이탈리아 공군의 공격을 받았고 어뢰 2발이 명중 프로펠러 샤프트의 손상으로 사우스햄튼이 글래스고를 대처했고 글래스고의 손상은 재료등의 부족으로 완전수리 상태가아닌 임시 수리 상태로 사용되었다. 수리가 끝난뒤 인도양에 배치되 전투가아닌 호위등의 역할을 주로 진행하였다. 42년에도 대부분의 임무가 호위였고 5월 6일에 글래스고는 영구 수리를 위해 미국으로 떠나 수리와 개장을 받는다. 수리후 스카파 플로우의 제 10 크루스 편대에 배속된다. 43년 12월 글래스고는 [[에메랄드급 경순양함|HMS 엔터프라이즈(순양함)]]과 독일 구축함 부대와 [[비스케이 만]]에서 전투를 치러 독일 구축함 1척과 어뢰정 2척을 격침시키고, 폭탄까지 맞았지만 귀환했다. 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글래스고는 USS아칸소, USS텍사스와 프랑스 함대의 몽칼과 그로주 레이그 예하 미국의 9척의 구축함과 3척의 헌트급 구축함은 C상륙부대 지원을 하였다. 6월 25일부터 글래스고는 독일의 발전장비를 포격했다. 45년 8월 동인도 제도함대에 배속되었다. 전후 글래스고는 다시한번 현대화 개장을 진행하였다. HMS 감비아, HMS 버뮤다, HMS 이글 예하 7척의 구축함, 두 개의 호위함과 함께 1954년 5월 2일에 몰타로월드 투어가 끝날 때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에든버러 공작을 호위했습니다. 글래스고는 HMS 감비아와 함께 1954년 8월 포트 사이드에서 제 40 여단의 철수에 참여했을 때 여전히 지중해 함대에 소속되어있었다. [[수에즈 전쟁]]이 끝나고 1958년 폐기되었다. *5번함 '''HMS 버밍엄''' (HMS Birmingham) 1938년 1월 5번함 버밍엄은 제 5 순양함 함대에 소속되었다. 40년 3월에서 4월 버밍엄은 [[몰타섬|몰타]]에 배치되었으며 이후 독일 상선을 파괴하기 위해 노르웨이 해안에 제 18 크루즈 함대에 소속된다. 4월 중순 버밍엄은 맨체스터와 함깨 카이로로 부대호송 임무를 진행했고 독일 순찰선 쉬르를 격침시켰습니다. 5월 에 맨체스터와 함깨 오달스네스에서 1,500명의 군인을 철수 시켰습니다. 41년 1월부터 4월까지 버밍험은 중동에 부대호송을 호위했고 5월 대서양에서 [[비스마르크 추격전]]에 참여, 그후 아프리카로의 호송을 호위했다. 아프리카에 셀본 드라이도크에 정박한 버밍험은 레이더 장비등의 개량을 거쳤다. 42년 3월 버밍엄은 개량을 마치고 지중해에 제 4 크루즈 함대에 소속되어 지브롤터와 아렉산드리아에 호송임무를 맡았다. 그러나 15대의 급강하폭격기 슈튜카의 공격으로 피해를 입었지만 9월에 마다가스카르 점령에 참여 11월에 버밍엄은 제 10보병사단을 [[일러스트리어스급 항공모함|일러스트리어스]]로 이동시켰다. 1943년 4월 개조를 마친 버밍엄은 11월 28일 독일잠수함 U-407에 뇌격을 받고 [[흘수선]] 아래가 심각한 손상을 받는다. 그 충격으로 포탑하나가 폭발 선내는 난장판이되었고 [[용골]]이 거의 절단나는 수준까지 심했다. 이 만신창이의 몸을 끌고 버밍엄은 [[알렉산드리아(이집트)|알렉산드리아]]에 도착 임시수리를 진행했고 완전수리를 위해 미국으로 떠난다. 1944년 11월 수리가 끝난 버밍엄은 제 10 순양함대어 포함되었고 주해역으로 이동한다. 45년 5월 종전때 버밍험은 [[다이도]]와 예하 구축함들로 발트해 항구를 점령한다. 5월 9일 코펜하겐에 도착하고 항복한 독일의 순양함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프린츠 오이겐]]과 [[라이프치히급 경순양함|뉘른베르크]]를 나포한다. 버밍엄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유엔군으로 한국 해양에 배치되었고 1,051발의 주포를 발사한다. 1955년 버밍엄은 지중해 제 1쿠르즈 함대에 기함이 되었으며 57년 6월 흑해 훈련에 참여한다. 버밍엄은 1959년 12월 3일 마지막 보수를 받았으며 1960년 9월 매각 스크랩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